[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6.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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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6. 신안군
  • 강래성
  • 승인 2016.03.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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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5국가유공자기념탑
증동리교회

 

▶6·25국가유공자기념탑

한반도 서남단 신안에서 배달민족의 후예로 태어난 용사들은 1950년 6월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조국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조국의 부름에 꽃다운 젊음을 바쳐 싸웠다.

개마고원 전투를 비롯하여 다부동전투, 낙동강전투, 단양지구전투, 도솔산전투, 백마고지전투, 사창리전투, 설악산지구전투, 안강지구전투, 금화지구전투, 현리지구전투, 해병제3연대의 김포지구전투, 양구지구전투, 영흥동전투, 적성리전투, 고성351고지전투, 지리산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에서 오로지 조국은 내 손으로 지킨다는 일념으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웠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기까지 3년여의 전쟁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전사자와 전상자가 발생했다. 이 귀중한 희생은 조국 발전의 초석이 되어 오늘날 세계 속의 한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희생자들의 거룩한 뜻과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위해 2008년 6·25국가유공자기념탑과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진리교회

진리교회는 1930년 문준경 전도사(한국전쟁 당시 순교)의 전도 결과 이판일의 가정과 친척 친지들이 세운 교회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북한군의 정치보위부가 임자도에 세워지고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판일 장로와 동생 이판성 집사는 신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다. 1950년 9월 24일 예배처소를 급습당해, 이판일·이판성 형제는 목포 정치보위부로 압송 당했다.

두 형제는 목포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 후 곧바로 임자도로 잠입하여, 성도들을 격려하고, 예배를 지속하다가 10월 5일 공산당원들에게 다시 급습을 당했다. 78세의 노모와 두 형제 그리고 온 식구가 3㎞떨어진 백사장까지 노모를 번갈아 업으면서 끌려갔다. 북한군은 이장로 가족 13명을 칼과 몽둥이로 죽인 후 한 구덩이에 묻었다. 이 후에도 3개월간 35명의 성도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증동리교회

문준경 전도사가 여인의 몸으로 설립한 교회만도 신안군의 섬 일대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증동리교회 등 10여 곳이나 되고, 해당 교회에서 김준곤, 이만신 목사 등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성결교의 대표적인 여성 순교자이기도 한 문준경 전도사는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섬 교회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큰 위치를 차지한다.

증동리교회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아골 골짜기 빈들에도 나아가기 두려워하지 않았던 문준경 전도사가 두 번째로 세운 교회이다. 한국전쟁 당시 문전도사는 이미 섬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지금도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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