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7.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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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7.진도
  • 신윤식
  • 승인 2016.06.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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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진도 운림산방
운림산방 모습.

[뉴스깜]신윤식 기자 =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운림산방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남종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 한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붙여준 호인데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 중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 때 초의대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서화를 배웠다.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를 겸비하여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제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이 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소치의 ‘몽연록(夢宴錄)’에 따르면 이곳에 다양한 화훼와 임목이 있었다고 전하나 오랫동안 황폐해 있었다.

1982년 손자 허건이 복원하였고 1992년과 1993년에 각각 보수하였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철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경사지에 세워진 운림산방의 맨 위쪽에 허유의 화상을 모신 운림사가, 오른쪽 뒷편에 사천사가 있다.

돌담으로 둘러진 안쪽에 살림집이 있고 그 전면 우측에 허유가 머물던 사랑채가 있다. 살림집 앞에는 1978년에 재건한 운림산방이 있으며 운람산방 앞에는 가로 33m, 세로 27m 크기의 연못이 있고, 연못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허유가 심은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화실인 사천사에는 허씨 집안 3대의 복제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관에도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허련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허련의 3남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이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고, 한집안 사람인 의재 허백련이 이곳에서 그림을 익혀 한국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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