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사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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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사회의 그림자
  • 오명하 기자
  • 승인 2018.10.2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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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뉴스깜] 칼럼=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 존경받는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보다 ‘법’과 친해져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법과 친해져서 법이 가르치는 데로 살든지, 반대로 ‘법 미꾸라지’가 되든지, 둘 중의 하나로 살아야 한다.
 며칠 전 주행속도 위반으로 ‘교통범칙금’ 납부 통지가 날아왔다. 무려 하루에 2건이나 된다. 얼마 전부터 도시와 도시를 사방팔방으로 연결하는 왕복 4차선 도로의 최고제한 속도가 10Km~20Km씩 하향 조정되었다. 좋아진 도로사정과 반대로 최고 제한속도를 하향조정한 것도 문제이지만, 교묘하게 감추어진 과속 단속 카메라에 걸리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다.
 그 정당한 논리에 누구라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제발 당국이 의도한대로 교통사고율이 대폭 감소되었으면 좋겠지만 새롭게 생겨난 차량 정체와 주민들의 불만은 또다른 당면 과제다. 그리고 ‘교통사고 감소’라는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의 정당성을 주민들이 인정하면서 아무말 없이 그 불편을 감내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최근 서울 모 여고에서 불거진 ‘쌍둥이 자녀와 교무부장 아버지’의 성적조작 의혹으로 언론의 보도경쟁이 뜨겁다. 결국 내년부터 불특정 다수의 교사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할 수 없는 ‘상피제(相避制)’가 도입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사와 그 자녀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불신사회 법률이 또 하나 탄생하는 셈이다.
 고려시대 처음 도입된 ‘상피제’는 일정한 범위의 연고가 있는 친척 간에는 같은 관서의 관원이 되지 못하게 하여, 정실이 개입될 소지를 없애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의 하나였다.
 국가운영의 근본은 법치주의다. 이는 ‘사람의 지배’ 대신 ‘법의 지배’를 통하여 통치가 행하여지는 것을 말한다.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서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모든 행정 행위를 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오직 국가만이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국민이 당면한 어떤 문제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여 행위의 적법성과 위법성 권리관계를 확정하는 주체가 사법기관이다. 이러한 사법기관은 법이라는 자(尺)를 가지고 국가와 국민들이 당면한 문제를 심판한다. 결국 사법부의 신뢰를 바탕으로 법치가 이루어지고 자유민주주의가 숨 쉬게 된다. 요사이 보도를 보면 공익보다는 사익에 눈이 멀어 잘못 사용된 사법권도 존재하는 모양새다. 설마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까지 사법권을 농단 했을까?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제발 소문으로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과거에  우리는 그 사법 권력의 핵심에 있던, 머리 좋은 사람들의 권모술수를 조금은 경험하였다. 이러한 학습효과로 사법(司法)시스템을 우롱하는 집단이 있는 모양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의 기억속에 그들은 그 방면의 기술자들이니 ‘사법권’을  자기들 멋대로 재단하고 요리하고 주무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또한 일부 잘못된 사법농단 집단은 선민의식과 자기도취에 사로잡혀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쳐있음을 우리는 익히 목격한 적이 있다. 이들에겐 제집 식구 감싸기, 사익을 위해 공익쯤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鼻懸鈴)이다. 세칭 이들 ‘법 미꾸라지’들은 국가통치체제의 근본을 뒤흔든다. 법치시스템의 약점들을 속속들이 알고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익을 취한다. 어찌 보면 ‘상피제’란 정작 이들에게 제일 먼저 적용할 법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배워왔다. 그리고 법은 공평한 것을 생명으로 한다. 사법권은 서로 이해와 주장을 달리하는 당사자들의 중간에 서서 공명정대하게 시비를 가려야 한다. 그래서 법관이 재판을 할 때는 전문 직업인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 법치에 의하지 않고 사람과의 거래에 의해 사법적 판단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되어서는  법치가 설 자리가 없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현행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법관의 재판상의 독립이다. 입법부 또는 행정부의 국가기관이나 소송당사자 혹은 사회적 세력 등 어떠한 외부의 간섭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까! “사법부는 인권과 법치의 마지막 보루” 라고 외친 노(老) 법관의 노(怒)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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