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성의 미학 < 꼰대철학에서 벗어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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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성의 미학 < 꼰대철학에서 벗어나기 >
  • 오명하 기자
  • 승인 2018.11.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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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뉴스깜] 오명하 기자=  가을이 깊어간다. 제 할일을 마무리한 나뭇잎들이 푸석거리며 눕는다. 옷장 속에서 십 수 년을 넘게 입어온 모직 스웨터를 꺼냈다. 왼쪽 소매 끝에 작은 실오리가 튀어나와 있다. 무심코 그 실 가닥을 잡아 당겼다. 잘 끊어지지 않고 반 뼘쯤 당겨 나왔다. 또 한 번 당겼다. 아뿔싸! 소매 끝이 풀어져 너널 거린다. 아마도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부터 실오리가 풀려왔던 모양이다. 오래된 옷이었지만 디자인도 아름답고 촘촘히 짜내려간 솜씨가 여간이 아니어서 세월을 넘겨 아껴 왔었다. 하지만 매듭이 풀려버리니 한낱 실오라기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이젠 추위를 막아줄 스웨터는 없어져 버렸다. 씨줄과 날줄의 오묘한 비틀림과 교차의 대척점으로 만든 관계가 해체되니 한 낫 실오리로만 남을 뿐이다.

사람들의 얽혀 사는 모습도 씨줄과 날줄의 연속된 관계다. 남녀, 친구와 동료, 상사, 이웃, 친척,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씨줄과 날줄이 되어 부지런히 베틀이라는 삶의 현장을 드나들며 의미를 만들어 간다. 결국 사람들 간의 관계성 전개가 삶의 현장이고 각자가 평생을 직조(織造)한 천(織,textile)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선(善)하고 아름다운 사람과의 관계성 전개를 삶의 지표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은 이유다.

누구나 촘촘히 잘 짜여 지고 아름답게 디자인된 인생을 살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날줄과 씨줄이고 싶다. 그러나 너와 나의 교차와 비틀림, 어울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천(織,textile)들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환경에서 만들어 진다. 끊임없이 변화에 대응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매듭이 풀려 쓸모없는 하나의 실오리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선(善)한 관계를 맺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열려있어야, 북통이 베틀을 가로질러 들락거리며 의미를 만들 수가 있다. 열려 있다는 것은, 어떤 기준을 정하여 자신을 성안에 가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프레임을 만들어 자신을 그곳에 가둔다. 기준이라는 것을 정하고 구분하고 속박하고 억압 한다.

사랑 까지도 개념을 정의하고 기준을 만들고 구별하려고 한다. ‘사랑 한다’고 밥 먹듯 말하고 또 고백하고 확인하여도 갈증이 난다. 자기가 만든 가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증만 쌓여갈 뿐이다. 이쯤 되면 사랑은 구속이고 억압이다.

그러나 본래 사랑은 어느 특정한 본질과 가치기준에 존재하지 않고 관계의 대립 면에서만 실재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의 ‘사랑 장(고전13:4~)’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다. 상대방에 대한 성냄과 교만, 숨어있는 시기심을 지적하고 무례함, 자기중심의 이기심과 악한생각을 경계한다. 선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공유하고 희망하며, 서로를 믿고 갈등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관계성의 대척점에서 존재하는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사랑법이다.

자기들이 만든 이념과 신념의 철옹성에 갇힌 조직이나 정당은 자신은 혁신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혁신시키려고 한다. 세계는 자국의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을 위한 피와 살이 튀기는 전쟁터다. 그런데도 당리당략으로 해지는 줄 모르는 도덕국가 대한민국은 아직도 ‘통촉 하시옵소서’로 읍소한다. 폴리페서(polifessor)들의 온갖 잡스러운 이론이 난무하며 길을 잃게 만든다. 공기(公器)가 되어야할 언론들은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논객들의 놀이터이고 카타르시스(katharsis)의 장이다. 이들은 불 난 집에 기름 붇고 갈등에 갈등을 부추긴다. 정당과 조직은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체 ’아니 되옵니다‘로 일관한다. 애당초 이들의 안중에는 위민과 부국강병은 없었던 모양이다.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고 있는 국민들만 불안하고 죽을 맛이다.

특정한 신념과 이념의 가치프레임에 갇힌 사람일수록 선명성 경쟁에 몰두하고 투쟁적이다. 그리고 오직 자기의 생각이 더 정의롭고 본질에 가깝다고 각을 세운다. 이러한 사회나 조직은 끝없는 갈등과 소모적 논쟁으로 국력은 소진되고 조직과 개인은 피폐하게 된다.

그물은 이쪽 가닥과 저쪽 가닥이 꼬여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조화로운 관계성의 증진을 통한 선한 삶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멈추지 않고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회발전의 기본이 관계성의 증진이라고 생각한다면 외부의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만든 자신의 이념이나 신념은 자유로운 나를 오히려 옥죄인다. 그렇다고 본질과 가치 지향적 이념과 신념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뛰어넘고 포용하는 씨줄과 날줄의 관계론적 발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갈등과 갈등이 충돌하는 이 시대를 통섭(通攝)하는 방법이다. 또 요사이 말하는 ‘꼰대’철학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날줄의 이쪽 가닥은 씨줄의 저쪽 가닥과 함께 꼬여서 하나의 그물망(羅)과 같은 천(織,textile)을 만든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자기 삶’이 만든 천이다. 선(善)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위한 노력이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고 빛나게 한다. 이제야 사랑은 서로가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희망이 된다. 외부의 보편적 이념이나 신념으로 만들어진 가치프레임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열려있을 때 갈등은 극복되고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그때서야 자기 스스로 윤리의 기준을 만들고 실행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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