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수은중독 피해자 "변변한 치료조차 못받아"
"업체대표 사과는커녕 얼굴 한 번 못봤다"
2015-11-03 이기원
[뉴스깜]이기원 기자 = 집단 수은 중독 사태를 일으킨 광주 모 조명제조업체의 공식 사과문 배포에 대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이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수은 중독으로 인해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한 근로자도 2명이 추가돼 6명까지 늘었다.
수은 중독 피해자인 모 하청업체 사장 김모씨는 3일 "업체 대표와 직원들의 사과를 받기는커녕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광주 하남산단의 A조명제조업체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수은 노출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과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또 "공장 생산 가동이 중지된 지 1년이 지난 뒤에도 배관 속에 잔류 수은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예상을 하지 못한 무지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전제한 뒤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의 쾌유를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하겠으며 수은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 근로자들은 수은 중독 증상을 보인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이뤄진 늦장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반발했다.
김씨는 "피해자들은 6개월 넘게 간 손상과 눈 떨림 등의 고통을 받고 있지만 현재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병원을 찾아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종이 한 장으로 대신한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은 중독 치료약이 국내에는 없어 수입을 해야 한다.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한 상자에 100만원이 넘는데 모두 환자 부담이다"며 "적어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영산강유역환경청이 A업체가 지하실에 약 3㎏의 폐수은을 불법 매립한 사실을 적발한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씨는 "불법 매립하거나 그대로 방치한 폐수은 양이 3㎏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은 중독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날 근로자 2명이 수은 중독으로 산재를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에 추가 신청하면서, 산재 신청 근로자는 모두 6명으로 늘었다.
더욱이 이번 주 안으로 최소 6명이 추가로 산재를 신청할 예정이어서 수은 중독 피해자는 최소 12명에 이르고 있다.
수은 중독이 의심돼 광주고용노동청이 임시건강진단 명령이나 권고를 내린 근로자들도 47명까지 늘어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수은중독 사건을 맡고 있는 최광현 공인노무사(법무법인 중용)는 "의사 소견서를 받는 대로 나머지 6명에 대한 추가 산재 신청을 이어갈 것"이라며 "퇴직한 A업체 근로자들의 피해 사실도 확인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A업체가 발주한 공장 설비 철거공사는 5단계의 하청과 재하도급을 거쳐 유씨 등이 속한 B산업에서 철거작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업체나 업주도 근로자들에게 '수은 노출 가능성'을 고지하지 않았으며 보호 장비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최근 업체 대표 김씨를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사법 당국에 고발했으며 광주고용노동청은 A업체 대표 이사 등 4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일부 근로자들은 '수은 노출의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김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수은에 중독된 사례가 알려진 것은 2000년 산업폐기물재생업체 은회수공정에서 3명의 노동자에게 수은중독증이 발생한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