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2.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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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한국인의 고향 ‘南道’ 2.순천
  • 승인 2014.11.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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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순천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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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깜]신윤식, 송우영 기자 = 순천왜성은 순천시 해룡명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것으로 1997년 국가 사적 제49호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는 ‘승주 신성리성’으로 불려왔다. 지금은 순천왜성이라는 명칭으로 도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순천왜성은 수륙요충지로서 성곽 규모가 36,480평, 외성 2,502m, 내성 1,342m로 외곽성(토석성)3개, 본성(석성)3첩, 성문 12개로 축조되었으며 검단산성 쪽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을 채워 섬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게 하였다.

외성이란 해자(垓子) 밖에 있는 낮은 산의 외곽을 돌아가고 있는 성을 의미하고 내성은 유구가 뚜렷한 석성인데 지금은 내성만이 그 흔적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다. 순천 왜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1597년 9월 ~ 11월 말) 왜장 소서행 장군이 쌓아 약 1년 이상 1만 4천 여 명의 왜병이 주둔했던 곳으로 일본군이 호남공략을 위한 전진기지 겸 그들 최후의 방어기지로 삼기 위한 목적에서 축성되었다.

 왜교성전투는 순천 왜성에서 정유재란의 마지막 단계인 1598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2개월간에 걸쳐 펼쳐진 전투로 광양만 해역과 해룡 일대의 육해 상에서 조선과 명 측의 수륙연합군과 소서행장 휘하의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정유재란 최대의 결전이었다.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소서행 장군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로써 정유재란은 막을 내렸다.
 
-신윤식 (뉴스 깜 기획취재 국장)
뷰코리아 대표
한국사진선교센터 대표회장
도서출판 한국사진선교센터 대표
한국사진작가협회 (1987년정회원)
(사)전남영상위원회 위원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운영이사
 
제27회 전라남도미술대전 사진부분 대상 
국전.도전,전국공모전,전국사진촬영대회 국제살롱-76회 입선및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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