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깜] “한때 사람의 숨결로 북적이던 터미널이 이제는 하루 몇 명만 찾는 공간이 되었다.”
버스터미널 관계자들이 요즘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과거 명절이나 주말이면 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과 사람들로 붐비던 대합실은 이제 고요한 정류소로 변모했다. 특히 전라남도를 비롯한 농촌 지역의 터미널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로 전라남도 내 다수 터미널이 이용객 급감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는 노선 축소나 기능 약화로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다. 하루 수십 명도 이용하지 않는 터미널이 많고, 상가 공실률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설 축소의 문제가 아니다. 터미널은 시외 이동의 중심이자 고령층 주민들에게는 병원 진료, 장보기 등을 위한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터미널이 사라지는 순간, 지역 주민들의 이동권이 위협받고 일상 자체가 고립된다.
전라남도 22개 시·군에는 총 48개의 여객자동차터미널이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농촌지역에 위치 해있다. 문제는, 지역소멸과 인구감소가 맞물리면서 이런 농촌지역의 터미널부터 하나둘씩 축소되거나 공영화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진도, 고흥, 화순은 사업자의 경영 포기와 이용객 급감으로 공영화 검토 대상에 올랐고, 강진, 곡성, 광양 등은 폐업 이후 지자체가 임시 운영하거나 공영터미널로 전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7년간 전남에서만 최소 6곳 이상의 터미널이 폐업했고,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터미널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남의 여객자동차터미널 연간 이용객 수는 약 11만 명 수준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다. 터미널의 절반 이상은 하루 50명도 이용하지 않으며, 100명 이하인 곳이 전체의 60%에 달한다. 심지어 하루 평균 탑승객이 10명도 안 되는 곳도 존재한다. 이용객 수를 기준으로 존폐를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 터미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터미널이 사라진다고 소멸지역 주민들의 이동권 침해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라남도는 22개 시군 전역에 공공형 택시 기반의 수요응답형 교통(DRT)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정된 예산으로 실질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고, 고령자 접근성 문제, 인력 부족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교통의 대안이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일상을 온전히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유지가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이다. 터미널을 지역 맞춤형 생활교통 거점으로 재설계하고, 수요응답형 버스(DRT) 도입과 소화물 물류 기능, 공공서비스 공간 등이 함께 기능할 수 있도록 복합화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 농산물 직거래장, 병원과 복지센터 같은 근린생활시설, 소화물 물류 기능까지 과거의 터미널이 지역 생활의 여러 기능을 포용하는 복합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쓰임새와 역할 자체를 재구성하는 접근이다.
이러한 변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 규제의 유연성, 지방정부의 과감한 실행력, 그리고 중앙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반드시 함께 맞물려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용객이 적다고 해서, 이동권이 사라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공간은 수익성보다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할 지역의 필수 기반 시설이다. 터미널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유일한 통로이며, 마을과 도시를 잇는 삶의 연결지점이다.
이제는 그 공간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대신,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나가야 할 때이다. 터미널이 복합공간으로 거듭나 지역의 활력을 되찾는 출발점이 되길 바라본다.
전라남도의회 김 인 정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