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시절 무전여행
[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
'뉴스깜'은 독서와,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안정산의 몽골 여행기를 연재하고있다.
▶ 청년시절 무전여행
버스가 출발하자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젖어보았다.
60년대 학창시절에 단돈 삼천 원으로 목포 부두에서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들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요즘은 학생들은 부모가 여행비를 마련해주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걱정까지 하다니 너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사랑으로 사회교육을 시키려는 애절한 부모 마음이 숨어있겠지만 옳고 그름은 그들 판단에 달려있고, 먼 훗날 좋은 열매가 맺어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오직 사랑으로 사회교육을 시키려는 애절한 부모 마음이 숨어있겠지만 옳고 그름은 그들 판단에 달려있고, 먼 훗날 좋은 열매가 맺어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속담에 “아이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 이것이 진정한 자식 사랑이다.”는 명언이 떠오른다. 그 당시 우리들 무전여행은 사회를 헤쳐 나가기 위한 산교육이었다. 나름대로 생활터전에 대한 각고한 준비 훈련이었는데 오늘 날은 여행하는 생각부터 다른 것 같다. 제주도 21일간의 무전여행은 도둑질을 제외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식생활을 해결해야 했으니 더욱더 확연한 차이를 느낀다. 옛날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봄철에 보릿고개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식량난에 허덕이고, 여름철 농촌생활은 더욱 어려워 쌀뒤주마저 비워진 막막함 그 자체였다. 그 당시 제주도는 섬 전체가 아름답고 해산물이 풍부했으나 농토가 부족해서 육지 사람들과 곡식을 물물 교환해 먹고사는 실정이었다.
지금 추억을 더듬어서 그 당시 체험이야기를 들려주면 먼 타국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것처럼 상상할 것이다.
제주시내에서 서귀포까지 횡단한 5.16 도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도로가 비포장이었으며, 알아듣지 못한 방언 때문에 대화가 끊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청년시절 꿈과 희망의 눈빛은 어떠한 역경이나 난관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용기가 활화산처럼 가슴에 타오르고 내게 숨은 자산으로 간직되었던 것 같다. 여행 장비가 형편없고, 텐트가 약한 바람에도 펄럭거려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군인들이 쓰고 버린 탄피통(항고)을 솥으로 사용하고 모닥불 피워 밥을 해먹었다면, 지금 세대가 그걸 곧이들을 수 있을런지…….
요즈음 대학생들은 지갑에 달러를 가득 넣고 외국으로 배낭여행 떠나는 모습 볼 때마다 부럽기 그지없다.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우리나라가 그만큼 부강한 나라로 우뚝 서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60년대 후반은 제주도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GNP가 필리핀보다 낮고 더 가난했었다.
지금 학생들이 그 시절을 체험하지 못했으니 어찌 무전여행 고생을 감각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에서 무전여행을 온 학생들에게 생각보다 반갑게 맞아 주었고 소박해서 인심도 후했으며 쌀과 반찬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덜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식사요리는 갖가지 나무를 태워서 해먹어야 했는데 시내에서 땔감 찾기가 아주 힘들었던 것 같다. 더욱이 제주도 해변은 비와 바람이 너무 심해 습관처럼 굶을 때가 많았다. 젊은 시절 그러한 무전여행이 지금 내 삶의 인고를 헤쳐 나가게 하고 인생반석의 축이 되었을 것이다.
한라산을 등반하다 연일 내리는 비 때문에 3일간 쌀만 먹으면서도 조난이 무엇이고 죽음이 도사린다는 생각도 못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면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억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의 스크린에 비추어진다. 마치 몽골초원에서 말 타는 모습에 연계되어 청춘의 즐거움이 되살아날 것만 같다.
간혹 내 자신이 청년처럼 젊다고 착각에 빠졌을 때, 가장 행복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에 힘이 솟아난다. 그때마다 꿈과 희망이 내 앞에 머문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하며 삶 속에 접목시켜 새로운 인생을 펼쳐나가도록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여행비는 투자한 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가슴속에 더 머무를 것이고, 때로는 고정관념도 깨트리며 진보를 향한 삶의 선상에서 희망의 발판이 될 것이다.
꿈은 언제나 지금 여기서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고, 항상 크게 꾸며 도전해야 한다.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희망의 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생활모습도 과거에 꾸었던 꿈으로 펼쳐지는 것 같아 명화처럼 재미날 때가 많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바라보니 서해안 갈대밭과 한없이 펼쳐지는 갯벌이 마음을 확 트이게 한다.
고속버스는 햇볕과 자연의 운치마저 커튼으로 가려버리고, 널따란 바다와 갯벌을 가로지르며 오직 목표 지점마을 향해 달려 나간다. 아름다운 정취는 못 느꼈지만 어느새 인천공항 안내판이 보여 반갑기만 하다. 어느 국가나 국제공항과 진이도로를 보면 그 나라 발전상황을 먼저 느낄 수 있듯이 인천공항을 오고갈 때마다 선진국으로 달려가는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석양의 햇볕은 버스 앞 창문까지 직접비추며, 시야에 많은 장애를 주었지만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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