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사와 커피 타임
저녁 식사는 몽골 음식일부와 비빔밥에 김치를 비롯한 감자탕을 요리한 한국식 메뉴 같아보였다.
주방장이 한국음식을 연수 받아서인지 내 입맛에 아주 잘 맞는 요리솜씨다. 식탁에는 각자에게 생수 한 병씩 주었으며 커피가 들어있는 작은 그릇과 녹차 팩, 그리고 보온 물통이 비치되어 잇다. 8명씩 원탁에 앉아 식사 후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커피 타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너무 다정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다.
어디 그뿐이랴, 서로가 마음의 향기를 뿜어내고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형성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회원들 간에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하도록 여러 가지 배려가 숨어 있다.
식사 전에는 물 컵을 부딪치며 ‘사랑 합니다’와 눈 맞춤으로 가슴가지 채워지는 행복감도 느끼게 했으며, 마음을 통해서 교감까지 이루게 하는 아주 편한 자리였다.
옛날 대가족제도처럼 둥근 탁자에 둘러 앉아 식사하니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더 맛있어보였다. 이처럼 우리는 헨티 아이막 칭기스터넛 캠프에서 게르와 식탁의 가족관계를 이루고 우정을 쌓으며 단체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막”은 우리나라 행정구역으로 치면 “도”정도의 개념인데 핸티 아이막은 체쳉한 아이막의 “솜”으로 1923년에 통일하여 설립한 아이막이다.
면적은 넓지만 총 인구는 7,500명 정도란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19개의 솜으로 나뉘어 졌다. 기후는 항상 변덕스러워 겨울 기온이 평균 -19℃~-23℃의 강추위임에도 단열이 잘 안 된 게르에서 의지하고 추위를 습관처럼 견디며 초원에서 짐승들과 함께 살아간다.
또한 그들은 혹한을 이겨내기 위해 짐승가죽으로 만든 전통 “델”이란 의상을 겨울에 무스탕처럼 즐겨 입고 있었다.
유목민들의 식생활은 가축에서 나온 육식과 유제품을 주식으로 즐겨 먹는데, 물고기는 24시간 눈 뜨고 몽골을 지켜준다는 전설에 따라 신성한 존재로 여기며 전혀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몽골 고양이는 실제로 물고기를 주어도 먹지 않아 신기함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봄에도 채소를 섭취하지 않아 비타민과 여러 가지 영양부족으로 건강에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안타까운 생활문화였다.
▶여행은 내 마음에 있다
안석현 실장의 핸드마이크 안내 방송은 마치 시골 이장 목소리처럼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듯 흘러나온다.
그는 “아아!”목소리로 마이크를 테스트한 후 다정다감하게 행동반경을 전한다.
식사 후 중앙식당에 모여서 자기소개 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게르에는 벌써 이웃이 형성되었고, 울타리가 없었던 옛날 시골 마을처럼 옆집을 편하게 드나들며 친분을 쌓고 있다.
몽골초원은 전체가 오지이기 때문에 다른데서 비추는 불빛이 전혀 없었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 가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밤이 시작되었다.
중앙 홀에는 만남의 시간이 다가오자 자유분방한 옷차림으로 회원들이 모여든다. 스태프들은 모든 프로그램을 숙련되게 소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진행해 갔다.
먼저 고도원 님께서 아침편지에 관한 소감을 피력하고 자신의 소개와 옛 추억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들려준다.
언제 들어도 실감났으며, 이타적 정신철학에 대한 설명은 모든 이에게 교훈이며 매력적이다. 존경심이 우러난 분위기와 친목을 돈독히 하려는 잔치 한마당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여행을 동참하려고 남편에게 거짓말했다는 중년부인과 열화와 같은 부모님 성원에 떠밀려 왔다는 등 천태만상의 회원들 일화가 소개될 때마다 큰 박수와 웃음보가 터져 나온다.
중간쯤에 내 차례가 다가오자 약간은 긴장이 뒤따랐다. 바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치과의사의 여행 동기처럼 잠시라도 마음을 비우고 싶어 홀연히 초원을 택했다고 말을 꺼냈다.
“회원들에게 아침편지를 올리기 위해 새벽 문을 두드리듯이 몽골에서도 여러분과 함께 여행하며, 초원의 호연지기를 가슴에 듬뿍 담아가려고 나이도 무시하고 맨발로 달려왔습니다. 설령 신체적 고통이 뒤따를 지라도 여행하는 동안 여느 청년처럼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모든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연장자라는 별칭을 부여받아서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나이에 아랑곳 하지 않겠으니 여러 가지로 잘 부탁드립니다.”
당당한 모습에 많은 점수라도 준 듯 휘파람 소리와 함께 요란한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번 여행만큼은 처음부터 작심했던 것처럼 초록동색이란 느낌이 유별나게 와 닿는다.
어떤 중년 여성은 암 진단을 받아, 착잡한 마음을 다스리고 넓은 초원에서 평화스런 세상을 마음껏 느껴보려고 딸이랑 참여했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겠다는 그녀의 떨린 목소리와 연신 흐르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딸 모습이 애잔해서 모든 회원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옆에서도 감동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쾌유와 힘내라는 응원의 박수소리가 한참동안 이어진다. 나처럼 인생을 즐기고 미래를 설계하려는 모습보다 봉착된 자신의 삶을 결자해지하려고 여행 온 회원들이 의외로 많았다.
마침 오늘이 50주년 생일인 여성회원은 스태프께서 미리 준비한 축하왕관이 씌워지고 생일축가와 함께 선물까지 받는 축복의 밤이 되기도 했다. 3시간에 걸친 자기소개가 끝날 때쯤 고도원 님의 당부말씀이 가슴을 짓누른다. 오늘밤 술 마시면 내일 말을 탈 때 낙마시킬 수 있으니 절대 금주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전해진다.
자동차 음주운전은 경찰이 측정하지만, 여기서는 후각이 발달한 말이 생소한 알코올 냄새를 맡게 되면 악취로 느껴져 색다른 반응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밤늦게 헤어져 각자 게르를 찾아가려는데 너무 어두워 손전등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었다.
우리 8조는 A-5 큰 게르에서 모두 뭉쳤는데, 음주에 대한 주의를 일러주었음에도 김진호는 비행기에서 사온 양주로 단합대회를 유도 한다. 첫날밤 분위기에 따라 학생들만 자중시키고 간소한 건배제의로 정배를 나누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한 이야기꽃이 유머와 함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늦은 밤이 되자 몽골 도우미 아가씨가 각 게르마다 난로에 장작불을 지펴주는 걸 보니 낮과 새벽의 기온차가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널따란 몽골초원 한 모퉁이에 자리한 칭 기스터넛 캠프에서 자연의 기운을 이불삼아 투명한 비닐 지붕사이 보이는 밤하늘에 별들과 마주하며 첫날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