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깜칼럼] 교육은 인간 유기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하는 활동이라 하며 교육활동은 계획을 세우고(plan) 계획을 실행하고(Do), 실행의 결과를 평가(See)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알게 하려면 교육계획을 세우고 실행지도하고 결과를 객관 도와 타당 도와 신뢰도가 높은 평가 척도에 따라 평가하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다시 계획을 세울 때 반영하게 된다. 이처럼 교육평가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평가하기를 거부하고 중학교 입시가 무시험으로 되면서(1968년) 초등학교 과정의 학력이 미달자도 중학교에 진급함으로 열심히 공부하려는 면학분위기가 축소되었다. 시험을 치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이다. 생산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기는 공이 제품에 대한 평가 없이 반출한다면 우량제품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시험과 평가가 있기 때문에 좋은 제품이 양산되며 시험이 있기 때문에 한 단계식 발전해간다. 운동선수는 단계별로 평가하여 통과되면 다음 단계로 발전하나 평가에서 통가 못 하면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시험은 어렵고 귀찮은 존재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인간이 사는 곳에는 교육을 받아 시험을 보아서 단계 별로 인증을 받았던 것이다. 대장간의 장인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기를 많이 하여 연모를 만드는 것이다. 쇠붙이가 평가를 받고 두들겨 맞지 않으면 좋은 연장이 될 수 없다. 해마다 학년 초가 되면 기초학력평가를 하는데 이것마저도 참교육한다는 부모와 교사들이 반대한다고 한다. 학년 초 진급한 학생의 기초 기본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선 전국적인 평가 척도에 의해 출제된 객관 도와 타당 도 신뢰도가 있는 평가지로 기초 학력 평가를 해야 하며 학력이 저조하면 교육계획에 반영해 교육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교육은 수레바퀴기 돌듯이 Plan-Do-See가 반복되고 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척도에 따라 도달점을 확인하며 교육한 교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평가척도에 도달하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평가 없는 생산 공장이 없듯이 교육도 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 평가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가르친 교사가 선택해 정해야 한다. 교사가 학습지도를 하는데 가르쳐야 할 학습 목표가 있고 지도한 후 목표에 도달했는가의 평가목표가 있으며 단위 시간이 끝나면 형성평가를 한다. 그러므로 교육현장에서 평가 없는 교육은 있을 수 없다. 학생위치에서는 시험 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교사입장에서는 번거롭게 생각하지만, 교육이 바람직한 변화에 목표를 둔다면 평가를 해야 한다. 인간을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평가를 많아 받은 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해왔다. 해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체에서는 자체감사(평가)와 상부 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는데 이 감사를 받아 척도에 어긋남이 없는 업무를 추진함으로써 행정질서가 잡히고 바람직 방향으로 성장 발전하게 된다. 감사가 없고 감사받기를 거부한다면 평가 없는 교육처럼 발전하지 못한다. 교육현장과 사회가 평가 없이 무시험으로 취업이 된다면 요행을 바라는 무능력 무책임한 국민이 되어 갈 것이며, 평가에 의해 인증받은 자가 취업이 되고 성공하는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국민은 시험(평가)받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제품을 만들어 평가의 척도에 접근해 제품을 만들어 내는 선진국 국민이 될 것이다. 선진국 국민이 되려면 시험(평가)을 수용하며 하는 일이 평가척도에 어긋남이 없이 하여 불량제품이 없는 선진국 교육, 기업이 될 것이다. 2016년이 절반 지났다. 일 년 동안 하겠다고 세운 계획과 실천에 대한 자체 평가계획을 세워 중간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 해의 중간 평가를 통해 연말의 변화와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 명심보감에 도오 선자 시오적, 도오악자 시오사(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말이 있다. 평가에서 칭찬받기보다는 질책하고 꾸중을 받는 것이 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게 해준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남을 평가 하려면 호감을 사려는 장점만 말할 것이 아니라 단점을 지적해서 상대자가 변하게 해야 하며 평가를 받는 자는 꾸중과 질책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감사히 수용해 새롭게 변해야 한다.
정기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