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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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28화)
  • 안정산
  • 승인 2017.02.0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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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

'뉴스깜'은 독서와,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안정산의 몽골 여행기를 연재하고있다.
 

▶ 초원의 녹두장군.

 

초원을 가로지르고 중간 대열에 끼어서 구릉에 오르니, 칭기즈 칸 탄생지 기념탑이 우뚝 서있다. 고도원님은 맨 먼저 능선에 올라서 중절모자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지휘봉처럼 긴 말채를 들고 스태프와 가이드들에게 행동반경을 지시한다.

우리 가슴속 깊이 간직된 영화“석양의 무법자”에서 말과 함께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미국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머리에 떠올리게 한다. 그는 항상 입에 담배를 물고, 이마에 주름살이 트레드 마크였다면, 지금 우리를 진두지휘하는 고도원님은 마치 동학 농민운동으로 맹위를 떨쳤던 녹두장군처럼 회원들의 마음을 이끌어내 변화시킨 혁명가가 틀림없다.

선글라스 속에 애리한 눈결을 숨겨놓고 널따란 초원만 응시하지만, 중절모속의 뇌리에는 수많은 프로그램 칩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도 모처럼 언덕에 먼저 올라 수백 마리의 말과 무질서하게 달려 오르는 회원들 횡대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한참 만에 말미대열까지 올라오자 말에서 모두 내려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말과 함께 초원에 푸른 꿈을 쫓아온 머나먼 대장정이었다.

회원들은 기념탑으로 집결해 벌러리마 교수로부터 칭기즈 칸에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칭기즈 칸 기념탑은 자연석 큰 돌에 역사만 기록한 채 심플하게 세워졌지만, 몽골인 선조들의 정신적 상징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 할 유명한 관광지라고 자랑부터 한다.

800년 동안 몽골인 가슴속에 묻어 두었다가 2003년에 세워진 기념탑에는 몽고족 옛글과 몽골에서 현재 사용되는 러시아 알파벳이 함께 적혀 있었고 칭기즈 칸 초상화도 위엄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탑 주위에는 X형으로 뾰쪽한 나무 울타리가 세워졌는데 말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란다. 주변에는 기념나무 한 그루 없이 기념비만 덩그러니 서있어 세계적인 영웅답지 않는 모습이었으며, 역사적인 업적에 비하면 국가적인 예우가 너무 부족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 영혼은 아직도 청춘처럼 시들지 않았으며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육(肉)은 썩으면 자연으로 되돌아갈지라도 혼은 우리 마음에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저 멀리 바라보인 초원의 거리는 측정이 안 된다지만 날씨가 청명해 몽골 전체가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말 타고 언덕을 내려 갈 때마다 조금은 숙련되었어도 위험이 도사리고,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회원들 말 타는 속도가 제법 빨라져 아침편지 촬영 팀과 몽골 취재진들도 프르공까지 동원되어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오늘따라 멀리 떨어진 칭기즈 칸 고향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말과 오토바이를 타고서 우리와 함께 초원 나들이가 한창이다. 어제 마라톤에서 1등 했던 용진이가 말 타고 즐기듯 손짓하며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나도 한나로부터 말고삐를 뺏어들고 5중 대열을 빠져나가려고 ‘준다쉬’, ‘바룬디쉬’와 ‘호르땅’을 외쳐대며 선두대열로 향해 바람을 가르며 달려본다. 내 모습이 생각보다 더 멋져 보일 듯싶었고, 이제는 추억을 장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역사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꾸며내는 자긍심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먼 발취에서 달리는 가이드 무기를 향해 빠르게 쫓아본다. 꿈같은 세계를 느껴보고, 이번 여행의 의미도 깊이 심취해 보는 기막힌 순간이다.

 

 

▶ 푸른 꿈을 향해 달리다.

나는 어느새 녹색바람과 함께 초원의 영웅이 되었고 젊음으로 자연을 진두지휘하며 청명한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모든 바람은 내 뒤로 밀려나지만, 푸른 초원만큼은 나와 호미(말 이름)를 놀리듯 하얀 구름 따라 한없이 달아난다.

지금껏 가슴속에 자리 잡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옹졸함도 초원에 묻혀 지니, 자연과 더불어 달리는 내 앞길에 여유로움만이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이제부터라도 남은여생을 바보같이 살지 않겠다며, 나를 대신해서 말에게 채찍을 가하니 더욱 빨라지고 마음은 후련하기만 하다. 이제부터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이 길 바래본다.

가을 낙엽처럼 바람에 이끌리거나, 죽은 물고기처럼 맥없이 물살에 떠내려가기는 싫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만큼은 설령 야생화로 살지라도 세월 속에 묻혀 살지 않고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색깔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려면 오직 노년의 세계를 올바르게 판단할 사고력이 있어야 하고, 나의 마지막 보루인 삶에 가치관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칭기즈 칸도 유목민에게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교훈해 주었다. 그처럼 초원 한곳에 머물러 있으면 가축들에게 새로운 영양식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또 다른 꿈을 꾸지 않거나 스스로 변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희망과 더 좋은 꿈도 자라날 수 없다는 뜻과 부합된다.

한순간 명상에 젖어 앞만 보고 달리는데, 한나 그림자가 다가와 계속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환하게 미소 지어준다.

조교들은 낙마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파트너의 속도조절과 승마자세가 안정되었는지 항상 주의 깊게 살피다가 말고삐를 빼앗기도 한다. 아직까지 말고삐 한번 물러 받지 못한 회원도 수두룩하다. 이제 말에서 내릴 때 무릎 통증이 덜하고 엉덩이와 꼬리뼈의 아픔도 나타나지 않는다.

많은 경험으로 자세 변화와 등자길이 조절에 대한 숙련에서 온 것 같다. 말이 힘차게 달릴 때 몸의 엇박자로 엉덩이가 안장에 부딪혀서 나타난 것을 깨달았고, 두려움과 고통까지 벗어나니 말 타기가 더욱 즐겁기만 하다.

이때가 낙마위험이 가장 많다고 했듯이 선두와 중간그룹에서 2명의 낙마 자가 발생했다. 마치 고속도로가 정체되듯 2열로 달리던 말의 무리가 7중 8중으로 겹쳐 멈추어 선다.

응급차가 달려오고 스태프들이 몰려왔다. 40대 후반 여성회원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보리차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정말 헬멧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하는 순간이다.

다시 한참을 달리는데, 이번에는 고등학생이 대열에서 벗어나 절뚝거리며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원님의 정신교육이 얼마나 많은 경험에서 나온 수칙임을 알게 했고 자만심은 언제 어디서나 절대 금물임도 가르쳐준 현장교육이었다.

 

“소금식 회원이 말 타면서 경험한 아찔했던 소감 한마디”를 카페에서 복사해 올려본다.

초보자의 말 타기 기본은 정신력이었습니다.

아무리 자신감이 있더라도, 자만심은 자칫 자신의 신체를

크게 다칠 수 있음을 어느 한 순간에 일깨워 주었으니까요.

말 타고 달리다가 초원의 환경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었습니다.

달리던 말 오른쪽 발이 작은 웅덩이에 빠졌는데,

겁 많은 말이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10미터 가량을

아무생각 없이 달아나더군요.

만약 내 자세가 흐트러지고 한 치의 오차라도 생겼다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뻔했습니다.

설명회 때 받은 교육으로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시종일관 안전의 중요성만큼은 끝까지 기억했음이

큰 위험을 이겨낸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 탈 때는 정신 줄이 곧 생명줄인 만큼

항상 긴장 속에서 즐거움을 함께해야 한다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어디서든 자만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며

말을 타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여행기간에 사고라도 발생하면 큰 불행이니까요.

마음껏 달리며 더욱 우쭐대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초보처럼 조심스럽게

여행을 잘 마무리해서 얼마나 다행인줄 모릅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131명 전체여행이

망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니까요.

지금도 넓은 초원에서 신나게 말 탔던

추억을 상상하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회원들의 하루가 초원에서 말 탈 때처럼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09 몽골 말 타기” 카페에서.

-전라남도 여수 소금식 올림-

 

오논 강을 건너면서 말에게 물을 좀 먹였더니,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한나는 말고삐를 뺏어 끌어당기듯 추. 추(가자, 가자) 소리 지르며 강둑으로 올라가게 했다.

한나는 아주 내성적이며 평소에 무표정이지만 순하고 착해 보였다. 휴식시간이면 마치 동생처럼 식당에서 챙겨온 빵이나 과자와 껌, 그리고 생수를 줄 때마다 항상 고마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준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6.25전쟁으로 기아에서 허덕일 때, 미군들이 주었던 껌이나 치즈, 헌옷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구호물품을 받을 때마다 한나처럼 너무 고맙고 감사했을 것이다. 우리사회도 과거 민생고를 회상하며, 나라가 국민에게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많은 혜택인지를 현실적으로 느끼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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