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공생원

[뉴스깜]신윤식 기자 = 일제시대에 목포에는 ‘거지왕’이라고 불리는 윤치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윤치호는 전쟁 등으로 고아가 된 거지들을 잘 보살펴준다는 이유로 ‘거지왕’이라고 불렸다.
윤치호는 1928년에 먹을 것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던 7명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공생원을 시작하였다.
당시 목포시청의 일본인 공무원의 딸이었던 윤학자 여사는 윤치호의 성품과 선행에 감동해 윤치호와 결혼하고 고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목포 지역 고아의 어머니로 불렸던 윤학자 여사는 광주에 갔던 윤치호 선생이 행방불명된 후에도 한국전쟁으로 갈 곳 없는 500여 명의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후에도 윤학자 여사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이들을 보살폈으며 그 공로로 1962년 문화훈장을 받고 1965년 제1회 목포시민상을 1968년 일본 황실에서 남수포장을 받는 등 민간대사로서 한·일간 가교 역할을 했다.
목포시 죽교동에 위치한 공생원을 시작으로 한 공생복지재단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직업전문학교, 정신보건복지 등 다양한 복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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