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29화)
상태바
[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29화)
  • 안정산
  • 승인 2017.02.24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

'뉴스깜'은 독서와,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안정산의 몽골 여행기를 연재하고있다.
 
▶선녀와 나무꾼이 찾는 오논 강.

오후에 오논 강 야외 풀장에서 선녀와 나무꾼에게 시간차를 두고 개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야호”소리가 함께 터져 나온다. 나도 처음엔 동화이야기처럼 들렸지만 멋진 이벤트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목욕 시간은 남녀에게 각각 1시간씩 배당인데 여성들도 자기네가 마치 선녀가 된 것처럼 좋아하고 기뻐 날뛴다.

발가벗고 목욕 즐기겠다는 오논 강변은 작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지나는 사람도 전혀 없어 아주 한적한 곳이었다.

점심이 끝나기가 바쁘게 나무꾼들은 커피타임마저 생략하고 강으로 달려간다. 차분하게 빨래도 하고 모처럼 알몸으로 목욕도 즐기려는 것이 다반사 같은 생각일 것이다.

때마침 강 건너 몽골 청년들이 말들과 맨 몸으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안장도 없이 묘기하듯 말 타고 급류를 헤엄치거나 역류하며 강변 뭍에 오르내리는 연습이 한창이었다.

회원들은 목욕하다 말고 묘기를 발휘 할 때마다 정신 잃은 듯 기립박수를 쳐준다. 말위에 올라 거센 물살을 헤치며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묘기와 높은 난이도로 우리를 감동시키며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겨우 말 타기도 어려움을 느끼는데 말과 친하게 수영하며 즐기는 모습들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오후엔 몽골 소리꾼의 전통노래 감상할 계획이었으나 며칠 전에 인척 집 방문으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몽골 유목민들의 통신망은 직접 전하거나 특유한 목소리로 멀리까지 전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조상 때부터 맑고 고음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던 것이다.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는 마치 신에게 물러 받은 자연의 음률처럼 들린다. 그들은 세월의 흐름이나 특별한 약속이 아니면 무관심하며 일반생활에 연관시키지 않는다.

오직 날씨를 알려주는 바람과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에 따라 일과표를 만들고, 태양이 낮과 밤을 구분해주는데 무슨 시계가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으로 현실을 벗어난 일엔 전혀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번민에 관계된 생활환경은 자연 속에 묻어두고 마음의 여유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들만의 인생이다.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자연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아담과 이브처럼 사랑과 행복만 누리라는 태초의 생각대로 사는 것 같다.

 

▶명상의 언덕

오후엔 30분정도 푸르공을 타고 명상의 언덕으로 이동했다.

헨티 아이막에서 가장 전망 좋다는 야산이었는데 끝없는 지평선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었으며 마치 칭기즈칸이 부족 간에 통일전쟁을 일으킬 때 고지로 이용했던 아주 중요한 곳 같아 보인다.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크게 자란 야생화들이 산재했고,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보았던 꽃들도 간혹 찾아볼 수 있었다.

모기들은 어디서든 행복과 기쁨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증명하듯 벌써부터 쏘아 되기 시작한다.

순수하게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정신세계가 오염될까봐 우리를 증오하는 것일까, 자연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불청객들이 찾아온 것에 쫓으려는 오기(傲氣)일까.

한참도 편하게 머무르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해 독침으로 공격해 온다. 삶 속에는 양면성이 겸비되었음을 인식하게 했다.

저 멀리 칭기즈 칸 마을도 보이고, 두 줄기 오논 강이 만들어낸 널따란 강변에는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으며 마치 평원에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다.

지금 몽골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칭기즈 칸 고향 배경도 이곳에서 그렸다는데 역사적인 그림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지고 전망 좋은 곳으로 유명한 언덕이었다.

고도원님은 꽃밭에 덥석 주저앉아 칭기즈 칸 마을을 바라보며 명상시간을 준비한다.

아침지기 징소리와 함께 명상이 시작되었고 잔잔하게 들려주는 시 낭송은 정신치유의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처럼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직도 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사다난한 일상들을 잠시 잊게 하고 이곳에 편히 쉬게 하며 미운사람도 사랑으로 감싸게 한다.

부정한 생각은 긍정으로 유도하고, 범사에 감사로 표출하니 나만의 묵상에 빠져들었다.

사람은 어떻게 쉬느냐에 따라 그 순간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되고 지금은 여행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휴식도 구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휴식으로 심신의 피로를 회복시켜주고 새로운 정신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서양인처럼 몇 개월씩 휴양지로 떠나 폰마저 꺼버리고, 번민을 벗어나야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마음이 변화되도록 휴식을 취하며 명상을 즐기는 진정한 휴식이 아닐까 싶다.

가능한 나의 심신을 자연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서 때로는 동식물들과 대화도 나누고, 마음이 통하면 자연의 신성함이 정신마저 말끔히 씻어줄 것 같다.

내공(內攻)도 편해야 비로소 자연처럼 휴식에 참맛을 느끼지 않겠는가 말이다. 어느덧 유목민의 휘파람소리도 적막 속에 묻혀지고 바람 소리마저 숨죽이니, 자연의 소박한 시 한수가 묻어나온다.

* 나무는 *

- 류시화 -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듯

함께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듯

함께

 

자연의 기운은 구름과 함께 둥실둥실 떠내려가다가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가을이면 아들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며느리가 될 경진이가 미소를 지으며 살포시 내게로 다가온다. 둘이는 정겨워서 잉꼬처럼 보인다. 추억은 아주 기쁘거나 슬플 때 내게 더욱 가까이 공존하는가 보다.

가난한 시골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 얼굴도 떠오르며 양쪽 볼에서 따스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무엇이 행복이며 만족이 어찌 내 마음 한켠에 넘쳐흐를까만, 이 순간만큼은 무소유와 무아지경이 오히려 평안하기만 하다. 지난세월 잘못을 회개하고 잠시 회한을 떠올리는 시간도 가져본다.

주여! 남은 인생은 주님 말씀에 따르겠으며 자연의 순리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와 함께 걷지 않으려 하시나이까. 나를 붙들어 인도하시고 성령이 더욱 충만하게 하옵소서.

어려서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시골 예배당에 다녔고, 결혼 후엔 부부유친 위해 아내 치맛자락만을 잡고 다녀서인지 아직도 내 마음은 변화되지 않고 종교인일 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게 해 주소서.

환갑이란 반환점에서 저를 깨닫도록 일러주며, 마지막 기회라고 명령하셨지 않았습니까. 벌써 무자년(戊子年)의 태양마저 서산으로 넘어갔고 목마름에 갈급 하는 생명의 오아시스처럼 새롭게 주관하시며 흘러가는 세월 속에 그냥 놔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길 잃은 목자처럼 인생 갈림길에서 주님 품으로 가라는 파란신호등이 밝혀져서 세례도 받았지 않습니까.

피할 수 없는 실버의 길을 따라 보람과 깊은 의미로 걸어가게 큼 인도해 주소서. 지난 기축년(己丑年)에는 황소처럼 엉금엉금 주님 발자국만 따라갔습니다.

지금껏 주님말씀을 무의도식 했던 만큼 “제자대학”에서 양식의 문을 열어주시고, 늦게나마 양육의 기쁨을 느끼게 한 것은 마지막 주님 사랑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속절없이 보내버리고 왜 이렇게 갈급한 목소리로 부르짖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은 어머니를 통해 머리 숙여 무릎 꿇게 하시고 끝없는 눈물로 그 동안의 잘못을 빌게 하며,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한 슬픔과 통곡으로 불효와 신앙에 대한용서도 받게 했다.

어머님은 항상 그렇듯, 환상(幻想)으로 나타나 미소로 달래주고 가슴속에 간직된 회한(悔恨)의 응어리마저 풀어주시며 눈물을 용서의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으로 주님을 외쳐 불렀더니 메아리가 되고 행복에 깃든다. 신앙 고백은 시간이 흐를수록 맑은 정신으로 성령을 체험하며, 구태정신도 몽골 초원에 묻어 버리게 했다. 아주 잠시였지만 후련한 마음 그지없었고 이제부터는 종교인에서 믿음 속에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했다.

지금껏 신앙에 대한용서의 확신과 변화된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많은 힘을 실어준 뜻 깊은 명상시간이었다. 명상은 내가 그려놓은 "노년의 바탕 화면"이 떠올라 흐뭇했고, 과거를 회개 할 수 있어 더욱 보람찼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는 간증과 명상의 아름다움은 대자연이 펼쳐준 기운의 나래덕분일 것이다.

이젠 호연지기도 두 번의 징소리가 울려 퍼지며 꽃밭에 펼친 장막과 함께 마음에서 내려놓게 한다. 아직 명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회원들이 많았는데 소박한 그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

우주 공간에서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글도 쓰고, 무중력 상태로 시도 읊으며 더 머물고 싶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어느 초원이든 사람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동물들의 똥은 널려져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섭리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이 아름다운 꽃밭에 오면, 편히 누워서 하늘과 마주하고 자연과 대화하며 야생화랑 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모기떼는 사단의 심보가 항상 그렇듯이 괴롭힘에만 힘을 쏟고 있다.

이런 것이 야속해서 악의 축을 소멸시키려는 능력이 필요한가 보다. 순수한 자연의 세계가 내 생각과 너무 다른 것은, 그 또한 자연의 생태계에서 우러나온 생존의 힘과 가치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