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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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30화)
  • 안정산
  • 승인 2017.03.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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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안정산 :몽골 초원의 푸른 꿈

'뉴스깜'은 독서와,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안정산의 몽골 여행기를 연재하고있다.
 
▶ 석양의 노을

석양은 지평선 아래로 파고드는데 노을은 구름과 함께 햇살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게 고통만 남겨둔 채 젊은 세월은 흘러 가버려 아쉬울지라도 얼마 남지 않은 삶 속에 반석이 된다면, 채우려는 나머지 시간을 더욱 성숙시켜야 할 것이다.

열매가 세찬 비바람에 견디어 낸 결실이듯, 초원에서 흘린 땀도 어디에 사용되든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길 바래본다. 세상 모든 행복은 고통과 시련을 넘어 설 때 무지개처럼 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저녁노을이 유난히 뻘겋게 펼쳐 보인 것도 우연히 아니라, 하늘이 우리에게 보람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큼 여망으로 펼쳐준 날씨 덕분이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저녁노을이 흠뻑 스며드는 것 같다. 그것은 오로지 희열감이라 말할 수 있고, 그 상태는 어떠한 욕망도, 갈등도, 미움도, 걱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편안하고 훈훈한 기운이 나의 내면에 깊이 파고들어서 듬뿍 담겨졌다는 뜻이다.

지평선도 아름다운 하늘을 보듬으며 한사코 어우러지려는 것은 힘들고 아쉬운 것, 슬픔과 환희 등 얼핏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몰아내지 않고 실제 상황처럼 하루를 잘 마무리하도록 달래주며, 감사와 유종의 미(美)를 황홀한 예술적 장관으로 보여주기 위함 일 것이다.

오늘도 내 생에 처음 느껴보는 뜻 깊은 하루였으니 말이다. 낮 프로그램을 끝내고 또 다른 저녁 장터로 향해야 하는데 왠지 발걸음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 가족을 두 파트로 갈라놓고 밤에도 바삐 쫓아다니며 자유스럽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

우정의 무대 출연 연습과 연 만들기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연 만들기는 미술대 디자인이 전공인 희재가 중심되어 학생 팀으로 이루어졌고, 우정의 무대는 김준호가 ‘무조건’이란 노래에 맞추어 편곡과 율동으로 연습시킨다. 여성과 청년들의 율동은 자연스럽고 조화도 잘 발휘되지만, 나를 비롯한 중년 남성들은 우왕좌왕하며 기초적인 율동마저 고갈되고 장작개비처럼 살아온 듯한 빳빳한 몸놀림 때문에 폭소가 터져 나온다. 맥주까지 마셔가며 술기운으로 율동에 맞추려 노력해보지만 아무리 연습해 봐도 어색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기본기마저 틀리니 어찌 웃음이 아니 나오겠는가. 나는 적성에 한계를 느끼고 연 만드는데 협조하겠다며 살며시 빠져나온다.

금은보화도 있을 곳에 있어야 모양새가 아름답게 보이듯, 여기가 진정 내 설자리인 것 같다. 취미생활이나 즐거움도 삶의 위치에 따라 의미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연 만들기는 옛 기억을 살려가며 내가 도맡았더니 장인솜씨처럼 연모양이 나타난다고 했다.

희재와 누리는 연 표면에 몽골을 상징하는 창작그림을 그리고, 용진이와 종훈이가 연살에 풀칠해서 부치는데 일사분란하고 진지하다. 누리는 좀 더디지만 칼라 풀 한 솜씨로 원과 사각형안에 여러 모양의 합성만화까지 그려냈고 희재는 누나처럼 지도하며, 차분하게 다양한 그림연출을 해낸다.

오전까지 연을 완성해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흐리고 게르 안이 컴컴해서 손전등을 비춰야 했고, 모두가 좁은 공간에서 이것저것 돕느라고 고생이 심하다.

꼬박 밤샘으로 정성을 다해 오전 10시에 방패연이 완성되었고 하늘에 올라 시연되었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각자의 개성과 협조로 꾸며낸 결정체였으며, 몽골 연 문화제 재연처럼 훌륭하다고 환희에 빠져 환호성으로 기쁨을 자축했다.

처음엔 누군가 “연을 꼭 만들어야 합니까?”라고 되묻기도 했지만, 조장께서 “여기는 단체 활동이니까, 좋고 싫고를 떠나야 한다.”는 사명감을 주지시키기도 했었다.

우리의 단합된 모습이 대견스러웠고 옛 기억을 살려낸 작품연출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또한 희재의 탁월한 그림솜씨와 연 만들기가 뛰어난 작품성에 9조 회원들까지 감탄을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체를 생각하자

8월 5일(수)

 

요즘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생수를 사먹는다.

21세기는 산업 발전에 의한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는 대기오염이 심화되고, 온난화 현상으로 기후가 변화되어서 머지않아 공기마저 사 마시는 시대가 올 것이다.

공상이 삶 속에 현실대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확신한다. 그렇다면 몽골 초원의 새벽공기는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 될 브랜드 가치가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여러 나라들도 옛날에는 척박한 사막 땅에서 떠돌며 살았지만, 세계의 산업발전에 따라 석유가 개발되면서 중동바람이 불어왔고 지금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 삶 속에 문화마저 변화되었으며 세계인들도 비즈니스를 위해 두바이 같은 큰 도시 속으로 몰려들지 않던가.

이곳 초원에도 건강한 삶과 행복지수를 높이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여행오고 비즈니스맨들이 공기를 상업적으로 개발해 수출하는 시대가 온다면, 다시금 몽골대제국이 이룩되고 발전하지 않겠는가.

나는 공상이 아닌 빨리 현실로 다가오길 기원해 본다. 새벽 조깅이나 산책할 때면 체내의 노폐물이 산화되어 한국에서보다 훨씬 심신이 상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침 체조가 끝나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뒷사람에게 안마를 받거나 “사랑 합니다”로 포옹을 할 때면 언제나 정다움이 깃들고 행복은 배가 된다. 때로는 아침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메마른 내 가슴속에는 정마저 스며들게 한다.

어제 점심때 여행이야기 나누었던 여성회원을 아침 체조시간에 다시 만나니 유난히 반갑고 10초간의 포옹이었지만 사랑의 느낌으로 승화되는 듯 했다. 특별하게 눈빛 한번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어찌 이다지도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걸까, 혹여 짝사랑이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단 말인가. 설마, 그렇기야 했겠소만……진정한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오늘도 팔부능선을 오르내리며 말 타는 기술을 새롭게 습득하는 날이다. 초원을 벗어나면 자갈밭이라는데 혹여 언덕을 넘어갈 때 말이 실수할까 두렵기만 하다. 오늘 말 타기는 언덕을 내려올 때가 위험하기 때문인지 아침 훈시와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고도원님은 선창으로 <전체를 생각하자>란 구호를 두 번이나 따라 외치게 한다. 그러나 곧바로 온유하고 다정한 분위기로 바꾸는 제치도 발휘해 보였다.

 

광주에서 나랑 함께 온 고등학생 박창원을 단상으로 불러 세운다. 내가 전해준 창원이 어머니의 애절한 편지를 두 번이나 읽었다며 등을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준다.

철부지한 마음으로 가출했던 어리석은 경험을 초원에서 씻어 버리고, 스스로 변화된 정신과 새로운 마음의 척도를 발표하게 했다. 그는 게르에서 함께 생활한 형들의 배려와 부모 같은 따뜻한 사랑에 감명 받았다며, 여행에 대한 긍정적인 미소와 함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회원들에게 고맙다는 선서까지 했으니, 모든 회원들도 새로운 꿈과 희망이 가득하길 바라고 기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도 이번여행 와서 많은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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