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잔 한 사람의 세뱃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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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잔 한 사람의 세뱃돈
  • 오명하 기자
  • 승인 2019.02.12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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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 뉴스깜] 칼럼 =민족의 대 명절 “설”, 천만명이상의 사람들이 부모님과 친지를 찾아 떠난다. 고향을 찾아 나서는 민족의 대이동, 한국판 엑스더스(exodus)다. 도로는 차로 인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골목마다 사람들로 법석인다. 사람모인 자리에는 푸짐한 음식과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밤 세워 준비했던 음식도 내놓고 가슴에 묻어 두었던 속사정도 풀어 헤친다. 그리움과 함께한 시간들이 올올이 꿰어져 아름다운 주렴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명절이라고 좋은 기억, 좋은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절 후유증으로 멍든 사람은 주부뿐만이 아니고, 세뱃돈 준비로 풀죽은 가장들도 있다.
 정월초하룻날은 어른들께 새해인사로 절을 올린다. 무사히 한해를 넘기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 감사의 마음과 새해에도 만수무강하시라는 축원의 의미도 담겨있다. 세배를 받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린 꼴이 되었다. 아이들은 세배를 하면 당연히 돈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어른들은 세뱃돈을 마련이 부담스러워졌다.
 세뱃돈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5만 원권이 생기면서부터 세뱃돈에 대한 부담이 더욱 늘었다. 1만 원권으로 주면 조금 적게 주는 느낌이 들고 쪼잔 한 사람이 되고 만다. 부모님의 용돈과 내•외가 친척의 자녀까지 챙기다 보면  힘이 부치는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세뱃돈에 대한 문화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설 문화다. 중국에서는 붉은 봉투(紅包)에 돈을 넣어 주면서 복(福)을 빌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양반가에서 일가친척의 인사를 대신 하러 온 하인에게 수고했다며 세배삯을 주었다는 기록정도만 남아있다.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은 다양한 방법으로 재분배 된다. 나이어린 자녀들이 받은 세뱃돈은 대부분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수금 해간다. 그러나 중학생 이상만 되면 세뱃돈에 대한 자기 소유권을 주장한다.
 세뱃돈은 에잇포켓(eight pocket: 부모, 양가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의 지갑)에서 나온 이전소득이다. 자본주의 상술은 이것을 그냥두지 않는다. 게임회사들은 세뱃돈으로 코인을 구입하여 각종 전자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나 할인행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게임 난이도를 증가시키면서 점점 빠져들도록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어서, 아이들의 세뱃돈으로는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금융기관들은 경제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외국통화 세뱃돈 세트’를 팔기도 하고, 재테크 차원의 세뱃돈 예금이나 적금 보험, 어린이펀드 등의 가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난감 등 전자완구의 매출이 설 명절 이후 획기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한편, 세뱃돈을 주는 방법과 형태도 다양하다. 세뱃돈 봉투 겉면에 책값, 학용품 값이라고 적어서 주는 것은 고전적인 형태다. 요사이는 로또 복권에 덕담을 적고,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녀의 마음을 읽어보는 경제적인 방법도 있다. 세뱃돈 대신 책을 주는 사람도 있고 문화상품권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것을 받는 아이들의 호(好) 불호(不好)는 논외다.
 어떤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이나 성품에 맞는 맞춤형 덕담을 적어서  자녀들에게 주기도 한다. 평소 읽었던 책속의 문장이나 아이들의 장래와 관련된 자성예언, 혹은 일상생활의 지표(指標)가 될 사자성어 등도 좋은 재료가 된다. 평소부터 자녀들의 성장과정을 보고 느끼면서 만든 덕담이어서 아이들에게 는 지혜의 주머니가 될 수도 있다.
 덕담(德談) 한마디가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다산 정약용의 제자 황상에 대한 덕담은 유명하다. 열다섯 소년은 자기가 “둔하고, 앞뒤가 막혔으며, 분별력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다산은 소년의 말을 듣고 “한번보고 척척 외우는 사람은 그 뜻을 음미하지 않아 금세 잊어버린다. 제목만 던져 줘도 글을 짓는 사람은 똑똑하지만 글이 가벼워진다. 한마디만 해도 금세 알아듣는 사람은 곱씹지 않아 깊이가 없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부지런 하고 부지런하고 더욱 부지런히 하라(三勤戒)”라는 격려의 말을 하였다. 자의식을 깨우는 덕담이었다. 이 후 황상은 설부(雪賦)등의 유명한 시를 남긴, 당대 손꼽히는 시인이 된다.
 ‘세뱃돈’을 주는 모습은 금전만능의 시대적 상황과 융•복합되어 우리나라 설 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문화는 그 시대의 가치체계와 행동양식을 지배한다. 그러나 그 문화가 과연 보편적 가치기준을 충족하고 계속 유지 발전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설’이라는 말은 한해를 세우다, ‘서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 자녀가 한해를 딛고 바로 설 수 있는 맞춤형 덕담을 정성껏 적어 용돈 정도의 세뱃돈과 함께 봉투에 두툼하게 넣어주는 것은 어떨까? 세배하는 자리는 자녀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전달할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대면의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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