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칼럼]울림이 있는 사죄, 분노를 부르는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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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칼럼]울림이 있는 사죄, 분노를 부르는 망언
  • 승인 2013.11.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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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사죄, 분노를 부르는 망언
 
"당연히 우리는 나치의 각종 범죄, 2차대전 희생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 가담하지 않은 제대로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또한 불운하게도 아주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장님이 되기를 자처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직시하고, 어떤 것도 숨기거나 억누르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오늘날 이미 그렇듯이, 미래에도 우리가 선하고 믿음직한 동반자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이런 사실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가 다시 발붙일 기회가 없도록 개개인이 용기를 갖고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자손대대로 분명히 말해야만 한다."
 
2013년 1월 26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사이트에 남긴 글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기념의 날인 1월 27일을 하루 앞둔 날이다. 글 속에는 사죄, 책임, 반성, 후손에게 일깨우는 경각심까지 모두가 들어있다. 세계 2차 대전의 전범 국가로서 독일의 사죄가 또 한번 이뤄진 것이다. 메르켈 총리 이전에도 독일의 사죄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1962년 7월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의 성지인 랭스대성당에서 드골 대통령과 함께 화해의 미사를 드리며 시작됐다. 이듬해 1월에는 엘리제 조약을 맺어 프랑스와의 화해를 맺었다.
 
독일의 반성이 진정으로 인정받는 계기는 1970년에 이뤄졌다. 그해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브란트 총리는 히틀러에게 학살을 당한 600만 유대인들의 중심 거주지였던 바르샤바의 게토지역에 위치한 ‘유대인 봉기 기념 추모탑’을 찾았다. 헌화를 하던 브란트 총리는 맨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긴 시간 묵념을 했다. 세계의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총리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 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정작 브란트 총리는 “나는 역사의 무게에 눌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의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브란트 총리가 말했던 ‘역사의 무게’는 독일 지도자의 말과 실천을 통해 국민에게 전파되고 후손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2005년에 만들어진 독일 베를린 중심부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일 젊은이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부켄발트 수용소 기념관 등 곳곳에서 독일의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독일 지도자들의 사죄가 우리에게 ‘울림이 있는 사죄’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진정성이 담겨있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실천 때문이다. 때문에 이미 독일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버림은 물론이며, 함께 가는 이웃국가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독일과 함께 세계 2차 대전의 또 다른 전범 국가는 일본이다. 패망 직후 일본과 독일은 똑같은 출발점에 있었지만, 7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독일과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는 하늘과 땅차이다. 그 이유는 독일의 전후 70년은 ‘울림이 있는 사죄’의 과정이었고, 일본의 전후 70년은 ‘분노를 부르는 망언’의 연속이었음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일본 극우 지도층이 보여주는 행태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대일 피해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일본의 위안부 사실 왜곡, 침략전쟁 부인, 전범 신사참배, 평화헌법 개헌 움직임 등에 대해 비난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독일의 브란트 총리를 무릎 꿇게 만들었던 역사의 무게가, 일본 극우 지도자들에게는 전혀 다가오지 않는 것인지 개탄스럽다. 역사의 무게를 모르는 경박함으로 침략을 부정하고, 신사참배를 당연시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전범이었음을 망각하게 하여 결국 국제사회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일본의 역사인식이 왜곡 일변도로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전후 50년을 맞아 1995년 8월 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에는 전후 최초로 전쟁을 ‘침략’이라 표현하고 식민지 지배를 참회했다. 일본의 현대사를 최초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인정한 담화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가 있다. 새로운 내각이 들어설 때마다 총리에게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은 이전의 역사를 계승하겠느냐, 부정하겠느냐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근 무라야마 전총리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 아베 내각의 극우적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지도자 한사람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가로서 다방면에서 함께 교류 협력해 왔다. 안보면에서는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으며,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과제를 풀어가야 할 동반자의 위치에 있기도 하다. 과거의 일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양국 모두에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덮어두고 미래만을 얘기하자는 것 또한 가식이다.
 
일본의 신뢰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전쟁 피해국과 주변국에 믿음을 심는 일이 일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무게감 없는 말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왜곡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을 공유하게 된다면 양국간 후세들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거의 문제가 미래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현재 국가운영을 맡고 있는 세대가 후세에 남기게 될 큰 죄가 될 것이다.
 
독일이 수십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피해국가와 주변국가와의 신뢰회복을 중요시하며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일본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싶다. 메르켈의 독일, 아베의 일본 양국의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볼 것이다.
 
이윤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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