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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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두드림
  • 승인 2014.07.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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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경찰서 여성 청소년 서기원 과장


 두드림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이야 거울이 흔하고 전동 바리깡도 있어서 혼자 머리를 깍는 스님도 계실 법 하지만 옛날에야 가당키나 했겠는가. 아무튼 혼자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이유망(重耳流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2패(覇)를 논할라 치면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있는데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이다. 진(晉)나라 문공의 이름이 바로 중이(重耳, BC 697-628)인데 ‘7전8기’, ‘주위상’(走爲上, 손자병법 36계중 마지막 계책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도망치는 것이 최고 상책이라는 의미)의 표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러냐하면 중이가 암살의 위험을 피해가며 왕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무려 43세부터 62세까지 19년 동안 전전하였던 나라가 적(狄)나라를 필두로 위(衛), 제(齊), 조(曺), 송(宋), 정(鄭), 초(楚), 진(秦)등 8개국에 달하고, 또한 단순히 도망치는 것만이 아닌 국내적으로는 왕위추대를 위한 모략과 국외적으로는 외교전을 병행하였고, 그 결과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으로 62세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주(周) 양왕을 옹립하였고 8년만에 성복전투에서 초나라 군대를 궤멸시켜 천토회맹을 통하여 당당한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중이병(中二病)이라는 말이 있다. 1999년 일본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나는 아직도 중이병에 걸려있다.”라는 멘트가 유행되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일본에서는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폭력성이 부각된 느낌으로 부모들이 애새끼가 하도 미치광이 짓거리를 해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할 때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중이여서 그래.”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북한군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이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버렸다.

 지금까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바로 ‘중이’이다. ‘중이’가 참으로 어렵겠구나내지 피곤하겠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공감하시는지.

  필자에게도 중학교 3학년 딸이 한명 있다. 중이병은 중학교 2학년 때만 앓고 끝나는 시한부 병인 줄 알았는데 딸은 지금도 중이병을 앓고 있다. 집에서 몇시간만 같이 있으면 “확그냥, 막그냥, 여기저기 막그냥” 언성이 높아져만 간다. 이러다가 불치병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관내에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금년 4월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게 했을까. 아이는 부모님 때문도 학교 친구들 때문도 그 누구 때문도 아니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냥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아이는 무(無)로 돌아갔지만 그러나 인식론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무(無)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는 것이다. 공유하는 추억만큼이나 아이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동정을 자아내며, 깊은 슬픔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부모도, 친구들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피를 흘리게 된다.

 6월 25일 청소년 경찰학교가 개소하였다. 기본적인 포맷은 전국 공통으로 주간 경찰체험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지만 우리 경찰서의 경우 야간에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활용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바로 “두드림(Do Dream) 카페”라는 명칭으로, 학교전담경찰관들과 상처로 고통받는 중학생 위주 아이들을 선발, 서로간에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7월 3일 저녁, 상실되어 버린 아이와 친하게 지낸 친구 8명을 청소년 경찰학교로 초청했다. 김밥도 같이 만들어 먹었고, 심리 상담도 받았으며, 같이 춤추고 노래도 했다. 우리만의 의욕으로 끝나면 어쩌나 라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든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이차이가 있는 학교전담경찰관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모습이 왠지 가슴 뭉클했다. 프로그램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닌 이를 운용하는 우리 직원들의 마음이 중요하고 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벌써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이제부터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려 보려고 한다. 아이들의 꿈들이 조금씩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말이다.


광주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 과장 서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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